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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25전쟁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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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단계 : 반격 / 북진(1950.09.15 ~ 11.25)

  • 9월 15일부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 및 9월 16일 낙동강에서의 총 반격작전 개시
  • 북한군은 9월 23일 이후 전 전선에서 후퇴시작
  • 서부지역에서는 유엔군이 경부축선과 호남축선으로 진격, 한국군은 중부와 동부지역에서 진격
  • 북한군은 한국군과 유엔군의 신속한 반격으로 퇴로가 차단되어 23,600여 명이 포로가 되는 등 전투조직이 와해되고 철수하지 못한 패잔병들은 지리산, 오대산, 태백산 등지에서 게릴라전 수행
  • 한국군과 유엔군은 10월 1일부 38도선 돌파 및 북진 개시
  • 맥아더 장군은 10월 24일 유엔군이 청천강변에 도착하자 국경선까지 총 추격전 명령 하달

1950. 09. 15 ~ 09. 18인천상륙작전

  • 인천상륙작전 위해 함포로 사격중인 UN군 (1950. 9. 15)
  • 함상에서 성공적인 인천상륙상륙작전을 보고 환하게 웃는 맥아더 장군 (1950. 9. 15)
  • 서인천상륙 작전 후 후속부대들이 차후작전을 위해 물자를 집결시키는 모습 (1950. 9. 16)
  • 낙동강 전투가 계속되는 동안 맥아더 장군은 적의 배후를 공격하여 전세를 역전시키고자 인천상륙작전을 계획하였다. 1950년 9월 15일 미 제 10군단과, 이에 배속된 한국 해병대 4개 대대로 인천상륙 작전을 감행하여 4시간 만에 월미도를 점령하고 하루만에 인청상륙에 성공함으로써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1950. 09. 16 ~ 09. 30총반격 및 수도서울 탈환

  • 서울을 탈환하기 위해 한강을 도하하고 있는 국군과 유엔군 (1950. 9. 22)
  • 서울탈환 후 중앙청에 감격의 태극기를 게양하고 있는 한국 해병 제2대대 장병들 (1950. 9. 28)
  • 동종로일대 적 패잔병 소탕작전 (1950. 9. 16)
  • 인천상륙작전을 계기로 워커 장군 휘하의 미 제8군은 9월 16일 낙동강 방어선에서 총반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초기에는 진전이 없었으나 9월 23일부터 맹진격을 실시하여 9월 26일는 오산에서 미 제 10군단 예하 미 제 7사단과 합류하여 계속 진격하였고,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아군은 1950년 9월 17일 김포비행장을 점령하고 한강을 도하하여 서울로 진격하였다. 적은 최영건을 서해안 방어사령관으로 임명하고 25,000명의 병력으로 최후의 저항을 하였으나, 한강을 도강한 국군 제17연대와 한·미 해병대 및 미 제 7사단은 적을 완전 섬멸하고 27일 서울을 탈환하였다.

1950. 10. 01 ~ 10. 19북진 및 평양입성

  • 양양에서 최초로 38도선을 돌파 후 기념표지판을 세우는 3사단 병력들 (1950. 10. 1) 정부는 이날을 국군의 날로 지정
  • 국군 1사단 병력들이 평양시내로 입성 (1950. 10. 25)
  • 김일성 광장에서 평양탈환 환영시민 대회를 하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1950. 10. 27)
  • 서울 탈환 후 맥아더 원수는 1950년 9월 30일 적에게 최후의 항복 권고를 하였으나, 적은 이를 일축하고 계속 저항해왔다. 이에 UN군은 북진을 결정하였고, 국군 제 1군단이 10월 1일 최초로 38도선을 돌파한 이후 중부전선과 서부전선에서도 38도선을 돌파, 북진을 계속 하였다.
    적은 주력을 청천강선에 재배치하고 약 8천명의 병력으로 대동강선에서 지연전을 전개하였으나, 국군 제 1시단과 제 7사단은 10월 19일 평양을 점령하였다.

1950. 10. 20 ~ 11. 24한ㆍ만 국경진격

  • 평양북방 숙천 일대에서 공정작전실시 (1950. 10. 20)
  • 제6사단 7연대 병사가 압록강 물을 수통에 담고 있다(1950. 10. 26. 초산)
  • 청천강 일대에서 적의 공격을 대비하는 UN군 (1950. 11. 6)
  • 혜산진까지 도착한 미7사단 17연대 (1950. 11. 21)
  • 동부전선으로진격한 국군 제 1군단과 미 제 10군단은 10월 10일 원산을 탈환, 17일에는 함흥을 거쳐 11월 25일 청진에 입성하는 한편, 미 제 2사단 17연대는 11월 21일 한·만 국경선상에 잇는 혜산진까지 진격하였고, 중부전선으로 진격한 제 7사단은 10월 21일 순천, 제 8사단은 10월 23일 덕천, 제 6사단은 10월 26일 최초로 한ㆍ만 국경선상의 초산에 돌입하여 국토 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